한민족역사문화공원 : 새로운 한민족의 탄생과 지구경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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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1908년 ~ 1932년)

독립운동가
상해 홍구 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 축하 기념식장에 폭탄 투하.
중국의 지도자 장개석 총통의 말, ‘100만 중국군도 못한 일을 한 조선인 청년이 해냈다.’중국 국민당 정부의 임시정부 지원의 계기.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보낸 편지 :

강보에 쌓인 두 兵丁(병정)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잇다면 반다시 조국을 위하야 용감한 투사가 되여라.


애국단원으로서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 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 축하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진 후 현장에서 일본 헌병들에게 연행되었는데, 윤의사의 의거로 일본상해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이 즉사하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주중일본공사 시게미쓰 등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아침, 백범 김구 선생님과 함께 김해산 동지 집에서 최후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것이 세상과 영원한 이별의 길임을 알고 자신의 시계와 돈을 생의 기념으로 김구 선생님께 맡긴 일화를 보면,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저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 밖에는 쓸 수가 없으니까요.” 해서 나도 기념으로 윤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를 윤군에게 주었다. 식장을 향하여 떠나는 길에 윤군은 자동차에 앉아서 그가 가졌던 돈을 꺼내어 내게 줬다. “왜 돈은 좀 가지면 어떻소?” 하고 묻는 내 말에 윤군이 “자동차 값 주고도 5, 6원은 남아요.” 할 즈음에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 메인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군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하여 머리를 숙였다. 자동차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천하 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 공원을 향하여 달렸다.

김구 선생님은 몇 시간 뒤에 있을 죽음 앞에서도 태연한 윤의사의 장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하에서 만나자는 단장의 한 마디를 던져 주면서 역사적 거사의 성공을 기원하였다고 합니다.
회중시계는 1932년 4월 29일 김구 주석과 최후로 작별할 때 정표로 서로 바꾸어 가진 것인데 윤의사 순국 후에 일본 정부에서 인장과 함께 보내온 것입니다.

중국의 지도자 장개석 총통의 ‘100만 중국군도 못한 일을 한 조선인 청년이 해냈다.’는 말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임시정부 지원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보낸 편지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강보에 쌓인 두 兵丁(병정)에게
너이도 만일 피가 잇고 뼈가 잇다면
반다시 조선을 위하야 용감한 투사가 되여라.
태극에 깃발을 놉피 드날니고
나의 빈 무덤 압헤 차져와 한 잔 술을 부어 노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육으로 성공하기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프랑스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마지막으로 윤봉길 의사의 유언을 살펴보면, 광복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친 꿋꿋한 의지와 신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직은 우리가 힘이 약하여 외세의 지배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세계대세에 의하여 나라의 독립은 머지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어 마지않으며,
대한 남아로서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이 떠나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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