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역사문화공원 : 새로운 한민족의 탄생과 지구경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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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조 고주몽백제 시조 온조신라 시조 박혁거세
고주몽: 동명성왕 (B.C 58년 ~ B.C 19년)

고구려의 개국시조로서 주몽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47대 단군 고열가의 후손이며 16년간(B.C. 37~16) 재위하였고 개물교화경을 남겼다.
성은 고(高). 이름은 주몽(朱蒙) · 추모(皺牟) · 상해(象解) · 추몽(皺蒙) · 중모(中牟) · 중모(仲牟) · 도모(都牟) 등으로 기록되어 전해진다.


주요어록

"나는 태양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삼국사기」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창조 하실 때 하나님의 모습을 본떠 균등하게 삼진(三眞)을 주셨다.

- 중략 -

하나님을 위해 본바탕을 통하고 중생을 위해 법을 세우고 선왕을 위해 공완(功完)을 이루고 천하 만세를 위해 지생(智生)을 함께 닦는 교화를 이루는 것이다.’「개물교화경(開物敎化經) 」

고구려인들은 단군조선을 계승한 천손의 자부심을 잊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석비 광개토호태왕릉비에는 고구려인들이 직접 새겨 넣은 1,755자의 비문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데,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호태왕의 영토 확장, 묘지 관리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 중 고구려 건국 신화 부분을 보면, 시조인 고주몽을 천제지자天帝之子, 즉 하늘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천제가 단군왕군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고구려인들은 시조인 주몽을 단군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천제지자를 믿고, 그 조상을 섬겼던 나라가 바로 천손의 나라 고구려였습니다.

중국 집안현에 있는 모두루의 묘에도 이런 고구려인의 천손의식을 찾아볼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루는 호태왕 시절 지방관리를 지냈던 인물로 묘 안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하백의 손자이며 해와 달의 아들인 추모성왕(고주몽)이 북부여에서 태어나셨으니,
천하사방은 이 나라 이 고을이 가장 성스러움을 알지니."


〈삼국사기〉·〈삼국유사〉·〈제왕운기〉·〈동국이상국집〉·〈광개토왕릉비문〉등의 관련기사에 의하면,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정을 통하고 버림받은 하백(河伯)의 딸 유화가 태백산(太白山) 우발수(優渤水)에서 북부여(北扶餘)의 왕 금와(金蛙)를 만나 그의 궁중에 유폐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해모수가 햇빛이 되어 나타나 유화에게 잉태시켜 알을 낳게 했는데, 이렇게 태어난 것이 주몽이라고 전해집니다. 총명하고 활을 잘 쏘아 촉망받던 중 대소(帶素) 등 금와왕의 7명의 왕자가 그 재주를 시기하여 죽이려 하자, 어머니의 권고로 마리(摩離) · 오이(烏伊) · 협보(陝父) 등과 함께 화를 피해 남쪽으로 도망갔습니다.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 유역의 홀본(忽本: 懷仁 · 桓仁)에 이르러 땅이 비옥하고 산천이 험준한 것을 보고 도읍으로 정했습니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성을 고라 하니, 대략 BC 37년에 해당됩니다. 당시 동가강 유역에는 여러 성읍국가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우세한 것이 비류국(沸流國 : 일명 多勿國)이었습니다. 비류국의 지배층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주몽 집단보다 먼저 이동해 정착한 집단이었습니다.

주몽은 BC 36년 비류국의 왕인 송양(松讓)을 굴복시켜 합병했으며, BC 34년에는 성곽과 궁실을 지었습니다. 이듬해에는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다시 BC 28년에는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키는 등, 여러 성읍국가들 사이에 연맹국가(聯盟國家)로의 통합운동을 전개, 국가기틀을 마련해갔습니다.
BC 19년 4월 부여로부터 도망쳐온 아들 유리(類利)를 태자로 삼았고, 그해 9월에 죽자 용산(龍山)에서
장사 지내고, 시호를 동명성왕이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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