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역사문화공원 : 새로운 한민족의 탄생과 지구경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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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 (?년~1135년)

고려시대의 승려


서경천도 주장

“개경의 지덕(地德)이 쇠했으니 왕기(王氣)가 있는 서경으로 옮기면 지덕이 성해져서 금국이 항복해오고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주장.
김부식 등 사대주의자에 의해 진압됨.
선도문화가 주류문화에서 하층문화로 전락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서경천도 좌절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의 좌절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朝鮮歷史上一千年來第一大事件)’이라고 함.


역사는 강자 중심으로 쓰여질 수밖에 없었기에
우리는 묘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묘청은 개경의 지덕(地德)이 쇠했으니, 왕기(王氣)가 있는 서경으로 옮기면 지덕이 성해져서 금국이 항복해오고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린다며 서경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고, 더 나아가 1128년에는 서경의 임원역(林原驛)에는 대화세(大花勢)가 있으므로, 그곳에 신궁(新宮)인 대화궁(大花宮)을 세우면 천하통일을 이루고 금나라 및 그 밖의 많은 나라가 고려에 항복하여 조공할 것이라고 서경천도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김부식 등 사대주의자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는 조선사연구소에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의 좌절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朝鮮歷史上一千年來第一大事件)’으로 말한 바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려 중기에 이르면 선도문화가 주류문화에서 하층문화로 전락되고 마는데 그 결정적인 전환점이 묘청이 주도한 서경천도 운동의 좌절이 주된 이유입니다.

고려 인종 13년에 선도와 불교세력의 구심이었던 묘청은 칭제건원론과 금국정벌론을 주장하며 자주적 민족정신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새로 유입된 유학파의 대표이면서 사대주의자로서 당대 실력자인 김부식에 의해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 국가적으로 진흥되었던 선도는 탄압을 받게 되고, 샤머니즘 또는 무속 등의 일반 기층문화 속에 숨어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민족의 자주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본격적인 사대주의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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